희동이 보아라.
내 일찍이 듣기로, 군대의 기후는 단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심지어 환절기조차 느끼지 못하는 고로, 언제부턴가 겨울이 찾아오고 갑자기 더위가 찾아오면 그때 가서야 여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느낀다고 하여 설마설마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나와 같은 민간인들에게 요즘 날씨는 그저 아침 저녁으로 조금 쌀쌀하나 낮에는 조금 더위를 느끼는,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이다. 군에 있는 네게는 더워도 고생이고 추워도 고생이겠으나 하루하루가 가고, 계절이 바뀜은 네 오롯한 정신이 한층 성숙해 가는 한 과정으로써 이해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언젠가 네 얼굴을 볼 때가 되면 꼭 한 번 물어볼 생각이다.
나는 매일 밤늦게 촉촉한 밤이슬을 맞으며 도서관을 벗어나 향긋한 풀냄새에 취하여 길을 걷고 있다. 항상 그 순간에는 여러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지만, 최근에 가장 먼저 떠오르던 것이 바로 '나라의 부름을 받고 힘써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나의 친구이자 대한민국의 아들'인 네 생각이었다.
사실 내 진즉부터 네게 편지를 보내어, 내 너를 잊지 않았다는 그 진득한 우정 표현을 하고 싶었으나 여차저차 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여차저차한 사연은 구구절절하며 애틋하니, 이 협소한 편지지에 그 측량할 길 없는 인생의 비린내를 담아낼 수는 없구나. 이 어찌 개탄스럽지 아니할 일이겠는가!
어떻게, 군에서의 생활은 잘 지낼만 한가? 나는 얼마전에 징병검사를 받았다.
어디 아픈 곳은 없었으나, 다만 시력이 좋지를 않아서 신체등위 3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나는 재수 보다 더 재수 없는 삼수벌레일 뿐이지만, 나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결국은 지고 나아가야만 하는 그 군이라는 곳에 자꾸만 생각이 미친다.
적절한 시간이 되어 언젠가 웃는 낯으로 한층 단단해진 네 얼굴과 맞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내 개인적인 이야기겠지만,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가 있다.
물론 여기에 이렇게 적는 것은 네게 조금이나마 연관이 있는 것으로 믿기에 그러는 것이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결국 올해에도 나는 많은 것을 놓치며 한 가지 가치만을 우선시 하며 나아가게 되리라고 본다.
네가 작년에 입대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하였으나 정작 떠날 즈음에는 내가 얼굴 조차 비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많이 안타까웠다. 밸 없는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군생활 가운데 내가 네게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수단이 정말로 몇 없다는 것이 너무도 가슴아프다.
사실 이것도 그리 긴 내용은 못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연락 조차 하지 못했던 내 속사정은 다 담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자꾸만 촉박하게 다가오고, 나는 그 물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 마리 벌레 같은 인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아 얼동아. 자주 편지를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전혀 연락 할 수 없게 될 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라 내가 어떻게 어디로 흘러 들어갈 지 알지 못하는 것이니...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 몸 건강하고, 정신없이 시간 보내며 잊을 법한 것들을 꼭 담아두길 바란다.
또한 군생활을 끝마치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네 인생을 보다 세련되고 알차게 꾸밀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 같은 것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날로 새로워지는 희동이가 되기를 기원하며!
2009년 5월 15일, 너의 벗 현인.
이번에 편지를 보내면서 양식을 하나 만들었는데, 첫번째는 '~~이 보아라.'
두번째는 '너의 벗 현인.'
이유는 별 거 없고, 왠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킬 것 같아서 이렇게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