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이다?

본인이 3인칭을 사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강철팬티 2008. 5. 6. 18:09

상선 이영만은 부러울 것이 없는 사내, 아니 내시였다.

권세는 드높은데 수염은 나지 않고, 부인은 있으되 정을 통할 수도 없으며, 자식은 일곱인데 모두가 다 외인의 몸이 섞여 나온 그는 내시였다.

궁궐을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긴세월을 보내고 이젠 이른 나이에 궐을 떠나 정처없이 달빛 따라, 바람 따라 발을 놀리며 요산요수를 희롱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얻게 해준 그것이 너무도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흐린 기억속 궐밖.
 달밝은 밤. 주체할 수 없는 기분에 이끌려 여러 처자를 으슥한 곳으로 끌고와 몸으로 눌러 눕힐 때, 그 처자들의 충혈된 눈과 자신의 눈물이 기억났다. 범하되 범하지 못하는 것을.
거세되어 분출될 수 없는 욕구는 매번 그렇게 그의 눈가를 통해 맻혀 흘렀다.

 얻은 것과 잃은 것이 너무나 잔인하고도 분명하게 갈려 있지 않은가.

정처 없는 유람을 끝내고 수많은 책과 벗하며 집에 틀어박혀 보내던 말년의 어느 날, 이영만의 신음과도 같은 탄성이 집안에 한 차례 크게 울렸다. 사랑에 들러 아버지께 문안 인사를 드리려던 아들이 졸지에 뛰쳐나와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아, 아버님이… 집밖을 나갔던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보이지 않소.”

 후에 모든 집안 사람들이 백방으로 그를 찾아다녔지만, 어느 누구도 이영만의 그림자 한 자락조차 발견하지 못했다.



 “하하하. 지금 나는 두 쪽만 달고 있군 그래.”
목구멍을 간신히 타고 넘어 울리는 듯한 웃음소리가 적막한 숲의 분위기를 한층 더 어둡게 하고 있었다. 권력의 비호에서 벗어난 이영만은 이제 두 쪽 밖에 남지 않은 남자 아닌 남자일 뿐이었다. 영만은 팽양이갓을 쓴 사내의 손에 이끌려 생전 처음 보는 울창한 숲속에 갇혀버렸다.
 지금의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소망을 이뤄주겠다는 사내를 믿고 이곳까지 따라왔다. 도대체 숨쉬기조차 거북한 이 울창한 잡목림에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이보시오!  대체 어디 있는 게요!”
두려움을 떨치고자 제법 큰 소리로 사내를 불러보았다. 공허한 메아리만 뒤따랐다.

“사람 불안하게 하지 말고 대답좀 해보시오!”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다시 한 번 외쳤지만 오랫동안 남자구실을 못했던 그의 유약한 목소리는 이내 숲의 적막함에 묻혀버렸다.
 여러 사람들이 지키고 서있는 자신의 거처에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방문한 자였기에 영만은 그 사내를 믿고 그 허무맹랑한 거래를 했다. 하지만 이래가지곤 그 사내를 찾기도 전에 얼어죽게 될 판이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영만의 얼굴에 점점 두려움이 짙게 드리워졌다.

“쯔쯔. 내 어떤 일이 일어나든 눈 하나 꿈쩍 않고 죽을 수 있다고 자신했건만… 이렇게 심약했을 줄은 몰랐어.”
오른손에 쥐고 있던 부채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영만은 앞에 보이는 큰 바위 주변을 잰걸음으로 돌았다. 그러다 발밑이 소리도 없이 푹 꺼져버렸다.



 - 으이그… 정신이 드시오?

 - 어허… 다, 당신은?

 - 허허. 내 무슨 일이 있어도 조급히 생각 말라 하지 않았소. 엇갈리지 않고 만나 다행이었지, 만약에 다른 자들의 눈에 띄었다면 영감은 천수를 다 누리지 못했을 것이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안개속에서 한 사내의 느긋한 음성이 들렸다. 온몸이 나른하게 늘어졌지만, 이 사내를 놓칠 수 없다는 생각에 영만은 안간힘을 써가며 정신을 차렸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시야가 조금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 이제 내 말을 들을 준비가 되셨소?

 - 그, 그렇소. 일단 무슨 말이라도 좀 해주시오.
 
 그러자 엉뚱하게도 사내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를 냈다. 입을 열지 않고 말을 하는 사람이 목을 가다듬다니……

 - 일단 길을 잘못 들였으니 영감이 내 얘기를 다 듣고난 후에 내가 적당한 장소를 골라 그리로 이동시켜 드리리다. 착오가 있어서는 아니 되오. 일이 끝나면 돌아오는 것도 잊지 말고.

 - 잊지 않으리다. 그럼 이제…





 영만의 부인 최 씨는 흠칫 놀라며 꿈에서 깨어났다.

 불안감 탓일까. 영만이 사라진 이후로 최 씨는 날마다 섬뜩한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매순간 들이마시는 공기 조차 이질적인 느낌이 온 몸을 뻣뻣하게 했다. 어엿한 집안의 안주인이지만 누구 하나 곁에 모여들지 않아 안채 주위는 항상 쓸쓸했다. 지금 최 씨의 편에 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최 씨는 아이를 갖지 못해 이미 한 번 쫓겨난 몸이었다. 오래전, 최 씨는 열아홉이 되던 해에 혼인을 맺었다. 드높은 권세가의 장남이 혼인 상대였는데, 혼인 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혼인이었지만 그리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그를 본 순간,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랄까.
 이렇게 찾아오는 게 사랑이라면, 최 씨에게는 더 없이 행복할 게 없을 것 같았다.



 깊은 밤.
 중요한 일을 치를 두 사람을 위해 주변의 사람들이 모두 물러가 있었다. 최 씨의 얼굴엔 숨길 수 없는 붉그스레함이 가득했다. 낭군의 부드러운 손길이 닿기 시작하면서 그 날의 밤은 점점 요동치며 달아올랐더랬다.

‘아가. 급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 젊은 녀석들이 우리보다 급해서 뭐하누. 그저 마음 편하게 먹고 몸조리 잘 하고 있거라. 그리 재촉하지 않으마.’
시부모는 조급함을 나타내지 않았다. 오히려 최 씨 자신이 가장 조급해 했다. 하지만 재차 서두르지 말라는 통에 최 씨도 어느 순간 마음을 편하게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일 년쯤 지났을까. 시부모나 남편은 변함 없이 느긋했지만, 이제는 최 씨 자신의 인내력이 시험받고 있었다. 이젠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될 때라고 생각했다. 집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홀로 대문을 나섰다.

‘날을 잘못 잡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병이 있거나 하겠어. 저기 보이는 산으로 한 번 올라가 봐. 용한 의원 하나 산다고 하던데, 잘하면 방도를 찾을 수도 있겠지.’
 점쟁이 나부랭이들에게 하대를 당하면서도 감사하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찾게될 수도 있는 사람들이었으니까.
 이리 저리 너무 오래 돌아다녔는지 벌써 날이 저물기 시작하고 있었다. 후한이 두렵기는 했지만 급한 마음이 앞섰기에 최 씨는 망설이지 않고 점쟁이가 일러준 산을 올라갔다.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면서도 주변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자꾸만 신경쓰였다. 한두명이 아닌 것 같아 내심 두렵기까지 했다. 조금씩 빨리 걸어봤지만 금새 따라붙었다. 차츰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올라갔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나타나지 않았고, 해는 완전히 저물어 이젠 돌아가기도 힘들 것 같았다. 조금 쉬다 내려갈 요량으로 적당한 바위에 앉았다. 그 때 이런 순간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었던 듯, 줄곧 최 씨의 뒤를 밟던 무리들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어린아이라도 의심을 품을 만한 옷차림이었다. 산적이 입기에는 너무 비싼 옷을 걸치고 있었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을거라곤 생각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배도, 배지 못해도 난 끝이구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데… 너무도 계산적인 사람이었구나…’

끊어질 듯 희미한 달빛이 욕정에 들뜬 깊은 숲 속을 비추고 있었다. 그 뒤는 예정된 순이었다.


 다른 사람이 되어버린 남편, 자신을 외면해버린 시부모, 경멸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마을 사람들. 남편은 집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보는 눈을 의식하며 줄기차게 협박을 했다.

‘입 다물고 살아라. 그 입 한 번이라도 잘못 놀리면 죽어서도 고통스럽게 만들어 주겠다.’최 씨가 그의 부군에게서 마지막으로 들은 작별인사였다.

 이런 이유로 최 씨는 씨를 받을 수 있으나 받을 수 없는 여인이 되었다. 그녀 자신도 구태여 변명하려 들지 않고 종적을 감췄다.

 ‘정적(政敵)은 믿을 게 못된다더니… 이게 다 아버님의 선택을 끝까지 반대하지 않은 내 탓이다.’


 그렇게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이리 저리 떠돌던 최 씨는 휑한 눈을 가진 한 사내와 마추치게 되었다. 사내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최 씨의 정조를 위협했지만, 최 씨는 묵묵히, 마음 대로 하라는 듯 사내의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한동안 정신없이 최 씨의 몸을 더듬던 사내의 몸이 별안간 멈춰버렸다.
 그리고 이마에 떨어지는 물방울. 미안하오. 미안하오. 그 한순간을 참지 못하고 죽을 죄를 지었소.

 사내의 목소리가 유난히 고왔다. 최씨는 가슴속에서 응어리진 무언가가 부드럽게 녹아드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그리 먼곳까지는 걷지 못했는지, 사내를 뒤따라 들어간 집에서 최 씨를 보고 흠칫 놀라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이제 어느곳에도 발붙일 곳 없는 신세가 되었으니 최 씨에게는 마지막 선택일 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 20년이 흘렀다. 상선의 자리에 올랐던 이영만은 마치 예정이라도 했던 듯 나이 50을 넘기자 마자 궐을 떠났다. 일곱이나 되는 양자들이 모두 장성하였을 즈음이었다. 홀연히 궐밖을 나온 다음 이영만은 부인 최 씨만을 대동하고 이곳 저곳을 유람하며 세월을 보냈다. 지닌 슬픔을 다 잊으려는 듯이.

 유람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이영만은 서재에 틀어박혀 긴 여정 동안 틈틈이 모은 방대한 양의 책을 쉬지 않고 읽었다. 최 씨가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은 ‘…찾고 있소.’ 라는 말뿐이었다. 무엇을 찾고 있는지도 물었지만 그 때 듣지 못한 답은 이제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될 것 같았다.








역시나 뒷내용은 극심한 조루 증상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서술이 감정적이지? 그리고 소재가... 양판도 아무나 쓰는게 아니라능


퀴즈 하나. 이 글엔 모순점이 하나 있다. 잘못 썼다는 거지. 맞춰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