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동이 보아라.
내 일찍이 듣기로, 군대의 기후는 단 두 가지가 존재하는데, 심지어 환절기조차 느끼지 못하는 고로, 언제부턴가 겨울이 찾아오고 갑자기 더위가 찾아오면 그때 가서야 여름이 되었다는 사실을 느낀다고 하여 설마설마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나와 같은 민간인들에게 요즘 날씨는 그저 아침 저녁으로 조금 쌀쌀하나 낮에는 조금 더위를 느끼는, 그저 그렇게 흘러가는 일상이다. 군에 있는 네게는 더워도 고생이고 추워도 고생이겠으나 하루하루가 가고, 계절이 바뀜은 네 오롯한 정신이 한층 성숙해 가는 한 과정으로써 이해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언젠가 네 얼굴을 볼 때가 되면 꼭 한 번 물어볼 생각이다.
나는 매일 밤늦게 촉촉한 밤이슬을 맞으며 도서관을 벗어나 향긋한 풀냄새에 취하여 길을 걷고 있다. 항상 그 순간에는 여러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지만, 최근에 가장 먼저 떠오르던 것이 바로 '나라의 부름을 받고 힘써 대한민국을 지키고 있는 나의 친구이자 대한민국의 아들'인 네 생각이었다.
사실 내 진즉부터 네게 편지를 보내어, 내 너를 잊지 않았다는 그 진득한 우정 표현을 하고 싶었으나 여차저차 하여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여차저차한 사연은 구구절절하며 애틋하니, 이 협소한 편지지에 그 측량할 길 없는 인생의 비린내를 담아낼 수는 없구나. 이 어찌 개탄스럽지 아니할 일이겠는가!
어떻게, 군에서의 생활은 잘 지낼만 한가? 나는 얼마전에 징병검사를 받았다.
어디 아픈 곳은 없었으나, 다만 시력이 좋지를 않아서 신체등위 3급 판정을 받게 되었다.
나는 재수 보다 더 재수 없는 삼수벌레일 뿐이지만, 나도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결국은 지고 나아가야만 하는 그 군이라는 곳에 자꾸만 생각이 미친다.
적절한 시간이 되어 언젠가 웃는 낯으로 한층 단단해진 네 얼굴과 맞대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내 개인적인 이야기겠지만, 들어줬으면 하는 얘기가 있다.
물론 여기에 이렇게 적는 것은 네게 조금이나마 연관이 있는 것으로 믿기에 그러는 것이다.
작년에도 그랬지만, 결국 올해에도 나는 많은 것을 놓치며 한 가지 가치만을 우선시 하며 나아가게 되리라고 본다.
네가 작년에 입대한다는 얘기를 듣기는 하였으나 정작 떠날 즈음에는 내가 얼굴 조차 비치지 못했다는 사실이 많이 안타까웠다. 밸 없는 소리로 들릴 지도 모르겠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군생활 가운데 내가 네게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수단이 정말로 몇 없다는 것이 너무도 가슴아프다.
사실 이것도 그리 긴 내용은 못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연락 조차 하지 못했던 내 속사정은 다 담을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시간을 자꾸만 촉박하게 다가오고, 나는 그 물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 마리 벌레 같은 인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아 얼동아. 자주 편지를 할 수 있을지, 아니면 전혀 연락 할 수 없게 될 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으로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따름이라 내가 어떻게 어디로 흘러 들어갈 지 알지 못하는 것이니...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 몸 건강하고, 정신없이 시간 보내며 잊을 법한 것들을 꼭 담아두길 바란다.
또한 군생활을 끝마치는 것을 기점으로 하여 네 인생을 보다 세련되고 알차게 꾸밀 수 있는 장기적인 계획 같은 것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날로 새로워지는 희동이가 되기를 기원하며!
2009년 5월 15일, 너의 벗 현인.
이번에 편지를 보내면서 양식을 하나 만들었는데, 첫번째는 '~~이 보아라.'
두번째는 '너의 벗 현인.'
이유는 별 거 없고, 왠지 그리움을 불러 일으킬 것 같아서 이렇게 썼다.
볕 잘드는 날. 쨍쨍한 하늘이 너무 좋아 빨래를 널던 것을 멈췄다. 뿅 하고 나타날 적마다 더러워 지는 아이들의 옷은 그 생애의 반을 건조대 위에서 보낼 것 같다. 실은 지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던 아이들의 옷을 간신히 찾아 널고 있는 중이었는데...
볕이 너무 좋아, 하늘이 정말로 상쾌해서 그만, 아이들의 옷가지에 눈물 방울을 적셔버렸다.
단지 볕이 좋고, 하늘이 맑개 갠 하루일 뿐인데... 나는 못말리는 남편이다.
그토록 듣던 잔소리를 그리워 하며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본다. 당신. 설마 지금 나보고 질질 짜지 말고 빨래나 널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아내와 보낸 시절이 행복했냐 묻는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글쎄. 서로에게 다 전해 주지 못한 사랑이 가득했는데, 그걸 채 열어보기도 전에 우린 살아 건널 수 없는 죽음의 강 앞에서 영원히 육신 대 육신으로는 함께할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빛바랜 흑백 사진들 속에 눈에 띄는 컬러 사진 한 장 처럼, 나는 그날의 일을 아직도 기억하고, 슬퍼하고, 안타까워 한다.
비가 내릴 날도 아니니까, 아이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다시 세탁을 해야겠다.
여전히. 봄 가을에 건조한 바람이 수시로 드나들던 집은 늙어있다. 10대라는 꼬리표를 붙이지 못한 아이들도 그대로, 수염을 너무 자주 깎아서 입가에 항상 반창고를 붙이고 다니는 나도 그대로.
그런데. 아내가 신혼 첫빨래를 해 보겠다며 사온 스테인레스 빨래 건조대는 없고, 대신 그 자리엔 제법 그늘이 고인, 훤칠한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어느날, 갑자기.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아내가 은행나무 묘목을 하나 사왔다. 넓은 마당에 변변한 나무 하나 없다는 게 이유였다. 나는 말없이 나무를 심었고, 아내는 그런 나에게 툭 던지듯 말했다.
"나 없어서 심심하걸랑 저거 보고 '사랑한다'고 말해. 그렇게 말하면서 뽀뽀까지 해주면 더 좋겠네."
그땐 어이가 없어서 웃어버렸다. 언제나 특이한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민망하게 나무에 뽀뽀를 하라니. 생각 참 곱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기껏 심어둔 묘목이 자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토양 문제인가 싶어 지렁이도 몇 마리 구해다 땅속에 풀어놓고, 게 껍데기도 버리지 않고 모아 나무 근처에 뿌려두었지만 도무지 키가 크질 않았다.
아내는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전혀 무신경했다. 정작 아쉬워할 사람은 따로 있었건만.
1년이 지나고, 아내와 나는 슬슬 자라기 시작하면서 무한한 재롱을 피우는 쌍둥이를 어르고 달래느라 하루종일 고생에 시달렸다. 밥달라고 같이 울고, 하나 다쳐서 울면 옆에 있던 다른 하나가 우는 식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마음껏 알려댔다. 사람이 나이를 먹을 수록 성숙해진다는 말은 괜한 소리였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온갖 고생을 마다했던 시절이었다.
이런 생활이 두 달쯤 지속되던 즈음에, 무슨 이유에선지 점차 아내의 몸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했다.
시작은 가벼운 어지러움 정도였다. 그런데 이 어지러움이 점점 심해지며, 나중에는 아내 스스로 '머리를 통째로 울릴 만큼 극심한 고통이 아닐까' 하고 말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됐다. 그래도 화도 안 내고 투정 한 번 안 부리던 아내였다. 말만 그랬지 항상 웃음을 달고 살던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아내가 발작을 했다. 잠시동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상황이 수습되어 구급차를 부를 생각으로 전화를 거는데 아내가 그것을 거부했다. 자기가 죽어도 그것만은 안된다며 끝까지 거부했다.
곧 죽을 것만 같던 아내가 다시 회복한 것은 첫 발작으로부터 한 달 뒤였다. 그 동안의 고통을 떨쳐버릴 심산으로 아내와 함께 이곳저곳을 신나게 여행했다. 날이 갈수록 더욱 좋아지는 아내의 모습을 보며 나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화창한 늦봄. 얼마 뒤면 장마라는 일기예보가 들렸다. 그렇지만 기상청은 그 날 하루만큼은 좋은 날씨가 될것이라 예보했다. 아내와 나는 밀린 빨래를 다 끝내버리기로 결심하고 마당을 분주하게 누볐다.
아내의 병간호와 갑작스럽게 다녀왔던 여행 이후로 집안은 많이 어수선해 보였다.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빨래를 먼저 할까, 마당을 먼저 치울까 고민하다가 빨래줄부터 다시 걸기로 했다.
한동안 많이 느슨해져 있던 줄을 다시 팽팽하게 당기고, 철봉을 단단하게 고정시켰다. 여기에 가지런히 이불과 옷가지를 널자 늦봄이 가져다 주는 온풍이 빨래들 사이로 다가왔다.
아이들은 아내의 건강을 생각해서 제 할머니댁에 맡겨놓았지만, 이만큼이나 건강해진 아내라면 그 말썽꾸러기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후후. 오늘 해지기 전까지 청소 끝내고, 애들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는 말없이 아직도 자라지 않는 은행나무에 손을 얹었다.
"당신 좋을 대로 해요."
말을 마치자 마자 터져나오는 웃음. 한 번 쯤은 자신도 진지한 표정을 짓고 싶어했다나 뭐라나.
혈색도, 움직임도 많이 좋아진 아내지만, 그날은 조금 무리를 한 듯 오후 조금 늦게 와서 툇마루에 앉아 내게 '조금만 쉬고싶어' 라고 부탁했다.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들이 햇빛과 바람에 영글어 가고 있었다.
아내는 조용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듯 싶더니, 그만 옆으로 툭 허물어져 조용한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어느덧 어린 은행나무에 석양이 걸리고, 나는 아내의 곁에 앉아 가만히 담장 너머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당 어딘가에서 굴러다닐 나뭇잎 몇 장과, 우리 부부의 모습에 심술이 난 미풍만이 간드러지는 소음을 내며 내 귀를 건드렸다.
결국 아내의 낮잠으로 나머지 집안청소를 모두 떠맡게 되었지만, 그래도 모처럼 편안하게 잠이든 아내의 모습을 보니 유치하기 짝이 없는 심리적 박탈감은 이내 사그라졌다. 아내의 손은 예전처럼 따뜻했다.
저녁은 늦게 찾아왔다. 보랏빛 하늘 구석에 샛별이 떠오른 것을 보고는, 말없이 아내를 흔들어 깨웠다. 아내는 개운한 표정으로 잠을 쫓았다.
"에잇. 당신 나한테 이러기야? 집안이 너무 깨끗하잖아."
"눈곱이나 떼고 나갈 준비하자. 애들 안 데리고 올거야?"
아내의 볼이 부풀어올랐다.
"알았어. 저녁 준비도 안 했으니 오늘은 꼼짝없이 외식이구나? 나쁜 남편. 분명 이걸 노렸을 거라고..."
"멋대로 생각하시고, 준비나 해서 나오세요~"
조금 오래 재워뒀더니 기력을 회복한 모양이었다.
밤이 되어 잘 살펴볼 수는 없었지만, 분명 날씨는 심상치 않아보였다. 다른 계절이었으면 몰라도 여름의 초입엔 이런 궂은 날이 무난하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 법한 일이다.
시시각각 진득한 어두움을 잊어가는 하늘을 바라보며 빗방울이 떨어질 시점을 속으로 추측해보았다.
멍하니 고개를 들고있던 중에, 무릎 언저리에 까만 점이 드물게 생겨났다. 어느샌가 나타난 사나운 먹구름떼는 너무 빨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덜컹했다.
그와 동시에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이 내 생각을 돌려놓았다.
"가자. 창문밖에 먹구름이 잔뜩 있는거 보고 우산 꺼내왔어."
아내는 내게 우산을 건네주더니 익숙한 걸음으로 신발장에서 슬리퍼 두 짝을 꺼냈다.
"그 바지는 걷고, 이 슬리퍼 신고 나가자. 알겠지?"
"좋아. 오랜만에 기분내서 한 번 나가보자."
과장된 목소리로 떨림을 지우려했으나, 목소리 자체가 불안정했다.
대문을 열어젖혔다. 이미 바깥세상은 묵직한 천둥소리와 정신 없는 빗소리에 제 빛깔을 잃어가고 있었다.
아내와 팔장을 끼고, 하나밖에 없는 커다란 우산속에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늦은 시각이 아님에도 세상은 두려움에 짓눌려 모든것이 다 까맣게 타들어갔다. 아내의 숨결이 닿자 내 몸이 조용히 떨렸다.
당신, 비가 무섭다고 했지?
아내의 입을 바라보는 것으로 겨우 그 뜻을 알 수 있을 정도. 이제껏 회피해왔던 두려움은 내게 전혀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다가와 내 모든 감정을 흔들어놓았다.
아내는 팔장을 낀 상태에서 내게 더 밀착해 왔다.
"후훗. 애들한테 부끄럽지도 않아?"
살짝 열이 올랐다. 그 장난꾸러기들이 내 이런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까. 미적거리던 몸이 조금씩 기운을 되찾았다.
멀지 않은 곳에 애들 친가가 있다. 때아닌 부끄러움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마음이 진정되어 걷기에는 더 좋았다.
아이들은 갑자기 나타난 엄마 아빠 얼굴을 보더니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칫. 할머니, 할아버지 안녕히계세요.' 라는 인사를 끝으로 각자 아내와 내 손을 잡고 집으로 이끌었다.
아파트를 내려오면서,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놀이공원에서 즐겁게 놀다가 길을 잃어서 그냥 할머니댁으로 돌아왔는데, 저녁 늦게서야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와 눈물을 뿌리며 사정 없이 자기들 볼을 꼬집었다는 이야기나, 놀이터에서 어떤 수상한 대머리아저씨가 최신형 게임기로 자신들을 유혹해서 따라갔더니 자꾸만 귀찮게 해서 화장실로 가는 척하며 경찰에 전화를 걸어버린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는데, 아내는 그저 킥킥거리며 아이들을 자기 품속으로 끌어들여 한 번 꼬옥 안아주는 것으로 하고싶은 말을 대신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밖을 바라보았지만, 비는 여전히 거세게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가방에서 우비와 장화, 우산을 꺼냈다. 아내는 아이들을 닥달하며 우비를 빌려달라고 요청했고, 아이들은 엄마의 '오늘 뭐 먹고 싶니?' 라는 유혹에 잠시 혹했으나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깨우고는 우산을 펴고 빗속으로 달려나가버렸다. 아내는 혀를 끌끌 차며 나와 다시 팔장 끼고 아이들을 뒤따라 갔다.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았기에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고깃집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아이들은 채식주의자인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유일하게 만족하지 못했던 육식을 마음껏 즐기고는 계산대에 정신이 팔린 나와 아내의 눈치를 살피며 박하사탕을 두 손 가득히 움켜쥐고 장화를 신었다. 물론 아내의 눈치로 많은 양을 되돌려 놓을 수밖에 없었지만.
무지막지한 빗줄기 사이로 무사히 집에 도착하자, 그동안의 긴장이 다 가신듯 기분이 무척 좋아졌다. 뭔가 잊은 듯도 했으나, 떨쳐내지 못했던 트라우마 하나를 이겨냈다는 생각에 그저 뿌듯했다.
아내는 아이들과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슬슬 차기작 준비에 착수해야만 하는 내 처지를 자각하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한시간여가 지나자, 온몸에서 열기를 뿜어내는 아이들과, 멋들어지게 머리를 틀어올린 아내가 내 뒤에 멈춰섰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수건과 옷가지를 챙겨 방을 나섰다.
번쩍 하는 빛과 함께 내리 떨어지는 천둥소리. 마루를 가로질러 욕실로 가는 내게 산뜻한 두려움을 안겨주었다. 그 덕분에,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을 그 초라한 은행나무를 바라보게 되었다.
모처럼의 갈증을 해결하고, 드디어 성장을 향한 날개짓을 하지 않을까 기대하며 땅속 어딘가에서 숨죽이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나무의 터를 바라보았다.
비가 퍼붓고, 그 밑에 뿌리가 자리잡은 탓인지 땅은 이리 저리 굴곡 있게 파헤쳐진 것처럼 보였다.
평소 같았으면 여기에서 고개를 돌렸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윽고 번쩍 하는 사이에 세상은 빛에 휩싸였고, 나는 그동안 내린 비로 인해 물기를 잔뜩 머금은 빨래들을 지켜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진 두 번의 천둥소리.
가슴을 울리는 굉음과 함께, 여리디 여리지만 내 심장을 꽉 죄어버릴 듯한 비명소리가 나란히 들렸다.
정신없이. 휘청거리는 시야는 안중에도 없이, 멀지 않은 서재로 향했다.
쌍둥이들은 모든 표정을 지워버린 채로, 온몸이 긴장된 것이 뻔히 보일 만큼 애처롭게 떨며 엄마를 불렀다.
이미 떠나버린 그 천둥소리. 그것이 예고에 불과했던 것일까
불러도 대답 없는 아내를, 아이들은 멍한 상태로 엄마를 깨우고, 나는…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마당으로 달려갔다.
마무리 짓지 못했던 것. 눈앞에 있는 불안, 동시에 위험.
별 것 아닌 젖은 빨래를 보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휘청거려 가만히 서있기조차 힘들었다. 내 바지주머니에 휴대전화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내 손은 그것을 붙잡기는 커녕 장마가 쏟아지는 마당 한가운데에 서서 빨래를 걷고 있었다.
아내가 그렇게 쓰러져 버렸지만, 나는 그 손조차 잡지 못했고, 얼굴은 커녕 같은 공간에 머물 수도 없었다. 아이들과는 또다시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되었다.
중환자실 앞에서 서성이는 시간보다 주치의의 얼굴을 보기 위해 병원 전체를 쏘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고, 그보다 집에서 툇마루에 걸터앉아 고개만 들어올린 채로 하루를 보낼 때가 훨씬 더 많았다. 병원의 어느 누구도 나를 피하기만 하는 것 같았다. 믿고 의지할 사람을 찾는 것조차 사치였다.
바닥에 널부러진 빨래는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 나를 더욱 괴롭혔다. 고개를 내리는 것조차 두렵고, 내 성의 없는 눈알은 곧 죄악이었다.
여름의 열기가 서서히 식어가며, 아침 저녁으로는 알싸한 비냄새가 났다. 익숙한 하루 일과처럼, 밤늦게 병원 중환자실 앞을 지켰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로, 나는 병실 안으로 들어갈 수조차 없는 보호자였다. 얼굴을 잊을 것만 같다는 나의 애원에도 그들은 눈 하나 깜빡 안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다시. 평범한 하루 일과로 돌아와서, 병원 의자에 앉아 아내가 나오는 꿈을 꾸기를 간절이 소망하며 눈을 감았다. 오전 1시가 훌쩍 넘어간 시간에, 응급실 말고는 형광등이 켜진 곳은 찾기 힘들었다. 새벽을 보낼 자리를 찾아 아무데서나 앉고, 그녀와 같은 공간에서 그 얼굴이라도 지켜보고 싶다는 기도로 아침을 맞이하는 계획은 지극히 평범했다. 쉼없이 돌아가던 병원 로비가 불을 끄고 휴식에 들어갔지만, 내겐 이 덧없는 밤이 무엇보다 소중한 일이었다.
갖은 사연을 안고 있는 병원에서 나같은 사람은 흔히 볼 수 있었던지, 병원 수위는 처음 며칠간의 떨떠름함을 벗고 그 뒤로는 순찰중에 나를 발견할 때마다 위로의 한 마디를 건네주었다. 그 누구도 지나다니지 않을 시간에 이곳에 앉아있는 나를 보면 자못 위로가 된다면서... 속이 상할만도 한 말이었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진정되는 느낌을 받았다.
늦가을에 몰아치는 태풍에 병원 입구는 쉴 새 없이 바람이 드나들어 위협적인 소리를 토해냈다. 미세한 떨림이 지속되었고, 폭풍우는 그저 검게만 보이는 세상에 난폭함을 더했다.
그 날만큼은 그 수위를 만날 수 없었다. 하다못해 순찰용 손전등 불빛이라도 보일 법도 했는데, 그 빛조차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느낄 수 없었지만 그가 매일 건네주던 음료 한 잔이 못 견디게 그리워졌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눈꺼풀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녹색 비상등 불빛이 잊혀지도록 눈을 감으려는 순간,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모든 알고있는 연락처를 수신거부하고, 오직 단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가지고 다닌 것이었다.
중환자실입니다. 들어오시죠
운명의 때가 왔다고만 생각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릴까봐 계단을 이용했고, 그마저도 무서운나머지 한 칸, 한 칸, 지금 걷는 이 발걸음 조차 아내에게 힘이 되기를 바랐다. 홀은 유령의 품속이 되어 나의 구두굽 소리 자체를 두려움으로 품었다.
몇 번이고 지나다녔던 이 길. 아내의 얼굴이라도, 하다못해 같은 공간에라도 머물 수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은 너무 많이 지났고, 나는 이토록 짧은 길을 걸으며 마음의 준비라는 것을 해야만 했다.
죽음은 어디에나, 너무도 가깝게 자리잡아 있다는 것. 중환자실이란 공간은 그 부조리한 깨달음을 내게 강요하고 있었다.
가만히 고개를 들어 모든 불이 꺼있는 병실을 둘러보았다. 저마다 죽음을 베고, 깔고, 그에 눌린 채로, 손을 뻗어 '나를 구원하소서' 라고 외치고 있었다.
그동안 속으로 삭혀냈던 절망적인 외침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주치의는 아내의 병상 곁에 앉아 '오셨습니까' 라는 중얼거림으로 나를 맞았다.
그는 내가 익히 알고 있던 수위였다.
예정보다 조금 늦어졌지만, 여기...
금방이라도 떨어뜨릴 것만 같아 불안한 나머지 내 몸이 먼저 반응해 음료가 든 캔을 낚아채듯 받았다. 그가 무슨 이유로 나를 변장한 채로 찾아다녔는지. 사실 주치의의 얼굴과 이름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여기... 앉아 계시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그렇게 하죠.
너무나 무거운 분위기가 숨쉬는 것 조차 힙겹게 했다.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연신 한숨만 길게 내쉬고 있었다.
대화는 쉽사리 시작되지 않았다.
그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품에서 녹색 병과 종이컵 두 개를 꺼냈다. 그리고 내게 컵을 하나 건네며 거기에 술을 가득 따랐다.
"차라리. 개인병원을 하나 차릴 걸 그랬습니다."
그는 행동으로 자신이 지닌 슬픔의 무게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내게 따르고 남은 술을 병채로 들이켰다. 그의 표정은 이미 눈물을 남김없이 흘려보내고, 아직도 남은 눈물에 힘겨워 하며 보다 격하게 찡그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글을 쓰는 분이라고 하니, 모든 게 조심스러워 지더군요."
어떠한 말도 꺼내기가 무서웠습니다.
한 마디 말과, 용기 내어 고백하는 속삭임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아마도 그는 속삭이며 했던 두번째 말을 결코 내 앞에서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 왔으리라.
이 끝없는 무력감은 수십 년을 의사로 지내면서도 결코 익숙해 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아무 근거도 없이, 나는 더이상 그를 위로해 줄 수 없을 것임을 느꼈다. 그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내 바짓단을 붙잡고 그동안 내게 보호자로서 들어야만 했을 아내의 병에 대해 말을 반복하며 매달렸다.
"이제… 아내분을 데리고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오늘 아침에 바로 퇴원시켜 드리겠습니다."
병상의 윗부분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던 나는 정말, 미치도록 피하고 싶었지만 결국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아내는 고개를 돌리고, 다 죽어가는 얼굴로 나를 외면하며 울고 있었다. 시야는 더욱 아찔해 졌고, 나는 휘청이는 몸으로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 밤을 보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아내도, 나도 이 밤을 몸서리치도록 안타까워 하며 서로를 부둥켜 안았을 뿐이라 기억나는 것이 딱히 없었다.
눈을 살며시 떠보니, 그날 밤을 울면서 지새웠던 의사양반은 보이지 않았다.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오고 갔지만, 특별한 언질이 있었는지 나를 당장에 쫓아내려 애쓰던 사람들은 오늘만큼은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며 다른 환자들을 돌보았다.
아내와 잠시 떨어져 있는 것조차 두려웠지만, 그래도 정리할 것이 있었기에 잠시 중환자실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는 먼발치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었던지, 내가 밖으로 나오자 마자 내 옆에 붙었다.
"미리 말은 해뒀습니다. 아내분은 제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퇴원수속 마치고 돌아오십시오."
그는 홀연히 내가 지나온 곳으로 돌아갔다. 그의 조금씩 비틀거리는 뒷그림자를 흘끗 보고, 병원 로비로 걸음을 옮겼다.
퇴원수속을 밟는 도중에, 병원 전체에서 음악이 들리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멍한 표정 그대로 어딘가에 있을 스피커로 시선을 돌렸다.
한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흐느끼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노래를 부르며, '이제 퇴원하셔도 좋습니다.' 라는 병원 직원의 말을 무시하게끔 하며 나를 중환자실로 이끌었다.
아내는 간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나갈 채비를 마쳤고, 주치의는 나를 발견하자 말없이 손짓했다.
아내 역시 지난밤 마음의 준비를 끝냈던지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욱 안쓰럽게 하지만, 살며시 웃으며 나를 반겼다.
누구도 말은 하지 않았다. 입조차 굳게 다문채, 결연한 표정으로 중환자실을 나서는 우리를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병원 라디오방송이 고장이라도 났는지, 퇴원 수속을 밟을 때 들었던 음악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와 아내를 부축하며 길을 재촉하는 늙은 의사를 보고는, 비교적 젊은 의사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아내와 나, 그리고 백발이 성성한 늙은 의사 양옆에 도열해서 역시. 눈짓과 동작으로만 자신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병원을 빠져나오자 마자 보이는 고급 승용차에 아내와 나를 태웠다. 내가 눈짓으로 묻자 그는 옆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의 등을 툭툭 쳐서 운전석에 태웠다.
아내도, 나도 뒤를 쳐다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가 여지껏 참았던 말과 울음을 터뜨리며 통곡하는 소리는 들을 수가 있었다.
우리가 어디 사는지 특별한 말이 없어도, 운전기사는 능숙하게 길을 찾아 가고 있었다.
아내가 웃는 얼굴로 고개를 내 어깨에 기댔다. 그 늦은 봄날의 포근한 숨소리와는 다르게 조금은 거칠고, 위태로웠다. 나는 애써 외면하고자 눈을 감았다. 아내는 야윈 손으로 내 손을 잡아주고, 참아내지 못한 내 눈물 한 줄기를 닦아냈다.
왠지 차가 멈춰있음을 느꼈을 때, 아내는 이미 나를 안고 등을 토닥거리며 나를 깨우고 있었다. 눈을 뜨자, 아내는 운전기사와 내 부축을 받으며 작고 오래된 LP 레코드 가게로 향했다.
아내가 수집해 오던 수많은 LP판을 떠올리는 동안, 아내는 말없이 꽤나 좋아보이는 전축 하나를 구입했다. 가게 주인은 거동이 불편한 아내의 사정을 알아채고 스스로 문을 열어놓고서 아내가 구입한 전축을 들고 나가 아내와 내가 타고 온 승용차 앞에 섰다.
조금 시간이 지체됐지만 그리 늦지 않은 시각에 집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운전기사는 문을 열고 나와 아내를 맞았으며, 내게 명함을 두 장 건네주고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번의 인사를 끝으로 차를 몰고 저멀리 사라졌다.
그는 이틀도 과분한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다는 전제를 단 것이었다. 속사포같이 터져나오는 그의 설명을 나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전부 기억해 냈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자 모든 것이 엉켜버린 것 같아 속이 울렁거렸다.
서로 마주보고 있는 시간조차 너무 짧아 아쉬웠다. 그래도 알 수 없는 병으로 엄마를 떠나보내야 하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어머니께 전화를 드릴까도 했지만, 전화를 들고 번호를 누르려고 하자 아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무슨 이유일까 묻고 싶었지만 아내는 고개를 숙이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아내와 나를, 이 설움속에서 끼고 도는 그 보칼리제는 아내의 어깨가 출렁거림으로 끝나가는 듯 했다.
나홀로 몇 개월을 보낸 이 툇마루에서, 아내는 몇 시간이고 내옆에 앉아 주위 풍경을 바라보았다. 길지 않은 가을해가 저물어 가고, 나는 우리를 감싸는 침묵을 보내기 싫어 수없이 되내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리라 다짐했던 것을 모두 털어내었다.
세상이 완전히 암흑에 잠기고, 단지 먹다 남긴 죽그릇만이 달라진 풍경의 전부일 때, 내면을 울리고 사라지던 아내의 흐느낌이 내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내는 조금 흐릿하게 보이는 마당 한 켠의 은행나무를 시선에 두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도. 내가 아닌 것이 내 생명을 빼앗아 가고 있는 것 같아.
아내는 힘겹게, 또다른 선율로 날 이끌어 갔다.
그렇게 쓰러지고 병원에서 눈을 뜨니, 의사는 그저 미안하다고… 분명 신체기능은 현저히 떨어지고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되는 것인지 자신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그렇게만 말하며 눈물을 흘렸어.
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야. 내 몸은 병실에 누워있기 전부터, 어쩌면 태어난 그순간부터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을 거야.
병상에서 눈을 감고 있을때면 툇마루에서 고개를 높이 들고 있는 당신이 보였어.
아내는 힘겹게 손을 들더니 마당에 자리잡은 은행나무를 가리켰다. 주변 땅을 잠식해가며, 몰라보게 키가 커 있었다.
저녀석이 아닐까. 내게 물 이외의 다른 것은 먹지 못하게 하고, 햇빛 한 줌에 견딜 수 없이 행복하게 하는…
"지나가듯 소망했던 것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졌어."
아내는 나의 부축 없이 위태롭게 일어나 침실로 향했다.
다음날은 침대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아내를 위해 여닫이 문짝을 떼어내고 바깥 구경을 시켜주기로 했다. 몇 대째에 걸쳐 추억이 쌓여왔을 이 집에서 우리는 저마다 엄마나 할머니가 들려주었을 옛날 이야기를 하나씩 꺼내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덧 밤은 찾아와, 아내의 얼굴에 흉흉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제 눈조차 뜨지 못하는 아내는 베개밑을 손으로 더듬어 내게 LP판 하나를 건네주었다.
사실은 당신 들어보라고 예전에 사뒀던 거야. 왜 멀쩡한 집 놔두고 병원에서 잤어. 혹시라도 들어봤으면 얘기나 꺼내볼까 했었단 말야.
한눈에 봐도 오래된 것이 눈에 띄는 케이스에는 'Fritz Kreisler - Liebesfreud' 라고 적힌 손글씨와 함께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어떤 신사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었다. 아내는 처연하게 웃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언제라도 '나'를 위해 '그' 노래를 틀어주지 않겠어?
말을 마친 아내의 얼굴의 웃음기가 더욱 선명해지며, 끝까지 놓지 않았던 내 손을 살며시 풀어주었다.
밖에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몰래 다시 세탁을 하고, 옷을 가지런히 널었다. 한두 살 먹어갈수록 점점 영악하리만치 똑똑해지는 아이들에게서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나 긴장을 놓쳐선 안 된다.
분주히 마당을 오가는 동안에도, 아내가 내게 선물했던 88년산 천축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 크라이슬러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나는 너무나 익숙한 이 멜로디를 끊임없이 사랑하게 됐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나도 그 크라이슬러 처럼 글을 쓴다. 오래된 LP 판에서는 조약한 음질로 인해 비가 내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지만, 알 수 없는 포근함이 너무나 좋아서 수많은 연주자들의 CD가 있어도 나는 결코 그것들을 사지 않았다.
몇 분 안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음 하나하나가 내 감정을 파고드는 것 같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젠 자기들끼리 집에 들어와서 먼저 저 축음기부터 겨고 논다. 가끔은 자기들도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며 떼를 쓰지만, 이 귀여운 악마들의 성격을 잘 알기에 호응 조차 하지 않는다.
생동하는 봄기운이 내 몸을 가득 채우니, 졸음이 쏟아진다. 잠시 쉬는 셈 치고 툇마루로 돌아가 앉았다. 아내의 빈자리를 메우려는 듯 은행나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자라나고 있다. 자기들 키를 표시해 가며 경쟁하던 쌍둥이들은 몇 달 전부터 '게임이 안 된다.'며 아예 포기해버렸다. 사실 자기들 키의 몇 배가 되는 나무와 키로 경쟁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황당한 것이라, 말도 안되는 아이들의 푸념을 들으며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조소를 참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 잠시 웃음이 새어나와 한동안은 관심법에 이은 쇠꼬챙이 연타를 피하느라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토요일 오후는 쌍둥이들 얼굴 보기가 가장 힘든날이다. 아침 일찍 준비를 마치고 어딘가로 놀러 나가버렸으니 늦은 점심을 달라고 오후 늦게나 올 녀석들이다.
앉은 상태에서 기지개를 펴고,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의 앞에 다가갔다.
손으로 나무껍질을 쓰러내리자, 잊혀졌던 짧막한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나 없어서 심심하걸랑 저거 보고 '사랑한다'고 말해. 그렇게 말하면서 뽀뽀까지 해주면 더 좋겠네.
불현듯 또하나의 장면이 연결됐다.
마당의 흙은 비에 젖어 울퉁불퉁 해질만큼 부드럽지 않다. 거기다 나무 주변으로만… 그렇게 땅이 파헤쳐질 리가 없다.
내 두 손은 생각이 정리되기도 전부터 땅을 파내고 있다.
아내는 분명… '기쁨'을 위해 '슬픔'을 감추고, 자신의 낭만을 그 분신에 숨겨두고…
흙이 잔뜩 묻은 손 위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손으로 힘겹게 땅을 파내자, 사각형의 납작한 상자가 보였다. 흙을 털어내고, 가까이 대고 살펴보니 그것은 CD 케이스였다.
흙이 진득하게 묻어 있지만 한 번도 뜯지 않은 채 묻혀져 있던 CD에는 어떠한 설명도 담겨있지 않았다. 다만 익숙한 신사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전축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서재에 있는 CD 플레이어와 이어폰을 챙겨왔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음악을 주의깊게 감상하며,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당 한 켠의 은행나무에 다가가 쪽소리가 나도록 입을 갖다대고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말했다.
최신형 CD플레이어는 무슨 고장이라도 난 듯 한 곡만 반복해서 재생했다.
태어나서 한 번 쯤은 스쳐 지나가며 들었을 법한…
야속한 아내였지만, 반대로 밉지는 않았다.
걱정마요, 여보. 난 당신의 '슬픔'까지도 사랑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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